[ 더 행복할 수 있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츄쿵 츄쿵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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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행복할 수 있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

츄쿵 츄쿵

서울역에서 출발 후 한 번의 멈춤도 없이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직통열차 창가 자리에 몸을 구겨 넣은지
1분 만에 잠이 들었습니다.

새로 승진한 관리자 업무 스트레스로 힘들다는 걸 달래주다가
2024년 새해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태국 여친의 연락을 받은건 이틀 전이었습니다.
(태국여친 : 요즘 너무 힘들어. 새로 받은 보고 체계가 너무 복잡해
저 : 그럼 한국에 와서 쉬다가. 하하.
태국여친 : 그래. 그럴게.
저 : 어?
태국여친 : 있어봐. 비행기가 내일은 없고 모레 갈게.
저 : 어? … 어.
태국여친 : 결제했어. 예약 이메일 보낼게. 시간 없으니 겨울옷은 가서 살게.
저 : 어? 어… 어.
태국여친 : 나 먼저 잘게.
저 : 어.)

거리마다 쌓인 눈을 배경으로
겨드랑이에 큰 구멍이 난 모텔 가운을 입고
퀘퀘한 냄새가 나는 모텔 커피포트로 끓인 커피를 나눠 마시며
떠오르는 해를 보았던 2023년의 새해가 좋았나봅니다.

검은 면바지에 검은 목폴라티에 검은 반코트
급하게 온 터라 이렇다 할 패션도 준비하지 못했네요.
누가보면 돈받으러 온 줄 알겠지만
패션에는 꽝이라 오히려 이렇게 자신 없을 땐
올블랙입니다.

인천공항터미널1에서 예전엔 돈을 받은 것같은데
지금은 이벤트 기간이라 무료로 운행중인 작은 차를 타고
캐리어도 하나 없지만 아주 편하게 공항 내로 들어갑니다.

오른쪽 주머니엔 지갑
왼쪽 주머니엔 폰

이럴 줄 알았으면 A4용지에
이름이라도 써올걸 그랬네요.

원래는 방콕에서 6시간을 날아와 20분 후에 도착해야 하는 비행기가
1시간 딜레이되어 여유가 생겼고
스타벅스에서 화이트 초콜릿 모카를 받아서
잠시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봅니다.

택스 프리 영수증 처리하려고 줄 선 사람들
더 담으면 터질 것 같은 캐리어를 힘껏 닫는 사람들
떠나기전 가족들과 한 장이라도 더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
반걸음 반걸음 앞으로 가며 체크인을 기다리는 사람들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사람들

부럽습니다.
먼가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입니다.

비행기 티켓 가격… 결제하면 되는데
마음만 먹으면 되는데
원하는 나라 고르면 되는데
그러면 되는데
…는데
…는데

8월엔 여름 휴가로
9월엔 추석 연휴로
10월엔 남은 연차로
11월엔 12월엔…
얼마든지 방콕에 가서
팟타이 한 그릇에 무삥 한 10개씩 먹을 수 있었는데

…는데
…는데

왕복 비행기 티켓 + 호텔 + 식비 정도로
큰 손해나는 것도 아닌데

또 이렇게 지워지고 있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뚜껑 없이 가져와서 그런지
금새 식어버린 화이트 초콜릿 모카처럼
2024년도 정신차리면 12월이 될 것만 같습니다.

하루를 더 행복하게
더 치열하게 행복을 차지해야 겠습니다.

3층 한 바퀴 더 돌고 표정 관리하고
1층으로 내려가 높은 등급 신용카드로 자비를 베푸실
방콕에서 날아오는 흑진주를 맞이해야겠습니다.

후훗 흑진주를 품은 와이존의 향기는 얼마나 새로워졌을지 두근거리네요.
탱탱한 건포도의 맛을 볼 생각하니 이거 차암…

P.S. : …작년 12월에도 이런 다짐을 한 것 같은 기억이…쿠울럭…

댓글목록

서우아빠님의 댓글

서우아빠 작성일

왠지  이런  글을  읽고 공감이 가는걸  보면
왠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일단 지르고 생각했던 시절의 끝이 언제였는지 그마저도 가물가물합니다. 차라리 그때는 출국장 앞에 티켓은 들고 서있었는데요. ㅎㅎ

서우아빠님의 댓글의 댓글

서우아빠 작성일

이런글  읽으면 그냥 서글퍼 집니다
민증  형꺼 가지고  나이트클럽 갔던  시절이  어제 같은데 ㅠㅠ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영화관이 프랜차이즈화 되기 전에 극장 앞에서 쥐포랑 오징어랑 옥수수 구워주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포인트 적립은 커녕 거스름돈도 제대로 못받기도 하지만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ㅎㅎ 극장 1층 문 앞에 달린 조그만 티비에서 나오는 같은 예고편을 한시간씩 보고 오곤했습니다. ㅎㅎ

상하이눈님의 댓글

상하이눈 작성일

예전에 시조 글 적으셨던 분이시죠? 문체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필력이 좋으시네요ㅎㅎ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맞습니다.^^ 먼가 같은 주제로 너무 우려먹는거 같아서요. ㅎㅎ 새로운 소재들을 찾아보았습니다. ㅎㅎ

태조왕껌님의 댓글

태조왕껌 작성일

향기로운 시간을 보내실듯..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손의 촉감과 코의 후각과 입의 미각을 만족시킬 뜨거운... 뜨거운... 스타벅스 커피부터 마시겠습니다.^^

푸잌님의 댓글

푸잌 작성일

따스한 연말 보내시겠네요~부럽습니다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이불보다 후끈하게 몸을 덥혀줄 아름다운 밤이 될...듯 합니다.^^ 문제는 제 모터가 최근 몇년간 시동이 안... ㅎㅎ

솔루스님의 댓글

솔루스 작성일

왠지 깊은 여운이 남는 글인거 같네여
올한해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글인거 같습니다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서점에 있는 수백권의 책에도, 그저 지나가는 유투브 영상에도 있는 내용들인데요... 또 그러게 됩니다... 그때 그럴걸... ㅎㅎㅎ

마실7님의 댓글

마실7 작성일

따수하게 보내세요~~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스벅 화이트 초콜렛 모카가 이 겨울엔 딱입니다.^^ 따듯한 겨울되세요~!!^^

라리언님의 댓글

라리언 작성일

생각을하게되네요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참 쉬운 일인데요. 항상 연말이나 연휴 기간 끝에 생각이 나더라구요 ㅎㅎㅎ

에깅님의 댓글

에깅 작성일

공감이 정말 많이가는 글입니다
실천에 옮기기가 점점 힘들어 지고 삶에 지쳐가고....
근데 제 주위의 친한 분들이 병이든 사고든 하나둘 제곁을 떠납니다
눈물을 훔치며 그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다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함에 후회합니다
두다리 멀쩡할때 열심히 돌아다니고 두 눈 멀쩡할때 많은 곳을 담아두려고
매일같이 항공사 홈피를 뒤적이고 있습니다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지하철 계단쯤은 톡톡 튀어올라가곤 했는데요. 한 두 번 헛디딘 다음부터는 에스컬레이터 보이면 조용히 그쪽으로 가서 줄섭니다. 오리 훈제구이 먹다가 치아끼리 미끄러지는 느낌만 들어도 살짝 젓가락을 놓습니다.. ㅠㅠ

에깅님의 댓글의 댓글

에깅 작성일

서글픈 상황이지만
현실이네요. 조심 또 조심 해야합니다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정말입니다. 스마트워치도 뭐만 하면 심박수 경고가 떠서 벗어두고 안씁니다 ㅎㅎ

Kiho님의 댓글

Kiho 작성일

오우... 상당한 필력이시네요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조용하게 지나가는가 했는데요. 연말에 이벤트가 일어나네요 ㅎㅎ 글도 써보고 좋았습니다.^^

마카오박씨님의 댓글

마카오박씨 작성일

결국 남는 건 추억뿐이죠.. 그 추억들이 쌓여 그저 아름답게 기억되길 바랄뿐..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맞습니다.^^ 그리고 좋았던 기억도 슬그머니 슬그머니 지워지기도 하더라구요. 사진없으면 진짜였는지 가물가물하구요.^^

션이v님의 댓글

션이v 작성일

태국에서 한국까지 날라오다니 부럽습니다ㅎㅎ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1년에 2번은 꼭 오구요 ㅎㅎ 다른 친구들까지 오는 거 치면 12달이 꽉 찹니다 ㅎㅎ

션이v님의 댓글의 댓글

션이v 작성일

오~ 여친이 많으시군요ㅎㅎ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저도 공항을 통해 나가고 싶은데요... 주머니 사정이 ㅎㅎ 어떻게 저리도 잘 오는지... 참 부럽네요 ㅎㅎ

쌍100님의 댓글

쌍100 작성일

좋은 시간 보내시길..

주워드세요님의 댓글

주워드세요 작성일

좋은시간보내세요

고고마닐님의 댓글

고고마닐 작성일

ㅋㅋㅋㅋㅋㅋㅋ 건포도 아 이거보고 뿜었네요 처음에 몬가했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