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그러면 된거니까요. >종로 3가역의 모텔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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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그러면 된거니까요. >

종로 3가역의 모텔촌
이쁜 건물 6층의 욕조가 있는 스위트룸

앞으로 넘길 수 있는 달력이
12월 30일과 31일 두 장이 남았고

제 앞에 방콕에서 날아온 흑진주의 몸에 걸친 조각도
어깨선에서 슴덩이로 넓어지는 레이스 브라와 끈팬티 두 장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언더웨어가 간신히 버티는 터질 듯한 육체로 뻗을
제 인내심도 기름종이 두께로 두 장이 남았습니다.

하.. 정말 동남아시아 girl의 축복받은 하체란.. 진짜.. 하..

흐음 때로는 확 벗기기 전
와이존의 “여기 있어요~” 마크도 매력적이죠.
(자세히 보면 풀숲 주변이 살짝 젖어있는 것 같기도…쿠울럭)

서울역 ZARA에서 겨울코트 등 옷을 왕창 구입하고
예약한 모텔에 들러 다시 외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부츠컷 면바지에 터틀넥 스웨터를 입었다가 “벗고”
가죽 스커트에 흰 앙고라 코트를 입었다가 “벗고”
스트레이트 데님에 가죽 자켓을 입었다가 “벗고”

흠흠…
아무리 오래 보고 편한 사이라지만
한 여름 계곡에 놀러간 남매마냥 앞에서 훌러덩거리니
…너무 행복하기만 합니다. 헤헤 ㅎㅎ

(녀석… 이젠 많이 움직이면… 많이 흔들리는구나 ㅎㅎ)

입고 “벗는” 것을 계속 보다보니
이젠 코트까지 다 입어도
확실하게 어디에서 어떻게 육체를 구속하고 있는지 다 보이는 것 같습니다.

씻고 오일 바르고 향수 뿌리고
한 시간이 넘어서야 끝난 외출 준비로 종로 거리로 나왔습니다.

늘 통화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지냈는지
회사에서는 얼마나 바쁜지
최근 방콕 친구들이 한국에 입국하는게 얼마나 어려웠었는지
(아니.. 니네 나라에서 “그 초록잎”을 음료에도 넣고 국수에도 빵에도 넣고 그러니까..ㅎㅎ)

장장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인사동에 들어섭니다.

친구와 가족에게 선물할 기념품을 고르는 그녀로 인해
제 양손에는 점점 더 짐이 많아집니다.

노오란 머리핀과 하이얀 머리핀을 먼갈아가며 머리에 꽂아보고
태극기 뱃지가 붙은 카드지갑과 손수건을 몇번이나 펼쳐보고

기념품 구입에 열심인 그녀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래도 참 좋습니다.
누군가 옆에 있고 함께 같은 상품을 바라보는 시간이란 참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2500원 하는 머리핀과 5500원 하는 카드지갑이야 다 사면 그만이지만
그게 아닌 이 주제 하나로 30분 넘게 서로의 목소리를 꺼내어 들을 수 있는 게 참 좋습니다.

명동으로 넘어가기 전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합니다.
예전에는 벤티 사이즈(트렌타 나오기 전 가장 큰 커피 사이즈)로
둘 다 벌컥거리며 카페인에 취해 들이켰는데 이젠 둘 다 톨 사이즈 주문으로 만족합니다.

커피를 받아서 자리로 오니 회사에서 온 전화로 한창 따지듯이 통화중입니다.
저는 커피를 홀짝이며 왼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밀리의 서재로 오전에 듣던
소설을 마저 듣습니다.

20년째 알고 지낸 사이라 그런지
더 효율적으로 “같이 있는”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멀어져도 “더 그립지” 않도록
같이 있어도 “침범하지” 않도록
항상 연락할 수 있기에 “간섭하지” 않도록
언제 어디에서도 “내 사람이라” 생각하진 않도록

눈을 감고 귓속 가득 퍼지는 소설 세계에 빠져있는데
손을 잡는 감촉이 듭니다.

스타벅스에서 마시고 가자던 마음이 바뀌었답니다.
테이크 아웃 잔으로 바꿔서 걸으면서 마시자고 합니다.

저도
그러자고 합니다. ^^

버스를 타러가는 거리에서
그녀가 머리 위로 흩날리는 하얀 가루를 보며 말합니다.
“눈이 오고있어!! 나에게 정말 행운이야!! 한국에서 눈을 또 보다니!!”

흩날리는 가루를 손가락으로 살짝 비벼보니.. 잿가루네요.

“자기야..
그건..
저기 공사장에서 불어오는 잿가루야..

추워서 큰 페인트 통 앞에 모여 손을 녹이는 사람들 위로 올라간
잿가루가 여기까지 날리는거야.” 라고 말하려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어줍니다.

그냥
행복하면 된거니까요.

그냥 그러면 된거니까요.

댓글목록

마카오박씨님의 댓글

마카오박씨 작성일

허허..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같은 감성 충만한 로맨틱에서 --- 순식간에 로맨틱 코미디로 바뀌네요 ㅋㅋㅋ

louse님의 댓글의 댓글

louse 작성일

홈런각 분위기 만큼이나 글 솜씨도 홈런 임당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모든 질병과 불운은 2023년에 다 남겨두시고 훨훨 나는 2024년 되시기 바랍니다.^^

louse님의 댓글의 댓글

louse 작성일

고맙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후속작품도  기대만땅!!!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하루도 빠짐없이 재미있고 풍족한 인생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louse님의 댓글의 댓글

louse 작성일

꼭 신춘문예 출품 하시기 바랍니다.
담편 기대만땅!!!!

삼하나구하나님의 댓글

삼하나구하나 작성일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지금도눈감으면님의 댓글의 댓글

지금도눈감으면 작성일

앞으로 99년간 행복과 재미가 가득하시기 바래요~!!^^

원주민9님의 댓글

원주민9 작성일

막판에 잿가루 ㅎㅎ
필력 좋으시네유 ㅋ

션이v님의 댓글

션이v 작성일

ㅎㅎ 반전 좋습니다^^ 읽는 맛이 있네요

에깅님의 댓글

에깅 작성일

사소하지만 작은거 하나에 30분씩 이야기 나눌수 있다는건
가족보다 더 편안한 사이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솔직히 가족이랑 하루에 몇마디나 나누겠어요?
그런 사람이 언젠가 저에게도 나타나겠죠?

말라테마싸랍님의 댓글

말라테마싸랍 작성일

ㅋㅋㄱㅋ 막판에 반전 지리네요 글너무 재밌게 잘쓰네요 잘읽었습니다ㅋㅋㅋ

민수민루님의 댓글

민수민루 작성일

마간다의 작가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