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여기 사람이 아닌 거 같아. >햇빛이 방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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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여기 사람이 아닌 거 같아. >

햇빛이 방안 가득 채우는 11시가 넘어가면
슬그머니 정신이 듭니다.
얇은 커튼을 걷으면 온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것이 참 마음에 듭니다.

이불을 샌드위치 접듯 대각선으로 접어두고
곳곳에 공기 청정기가 돌아가는 붉은 카펫을 지나
피아노도 들어올 수 있을 크기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면
로비에서 깔끔하게 차려입은 경비 아저씨가
반가운 인사를 건네주시고 2시 방청소를 예약합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스타벅스에 앉아 샌드위치를 하나 먹고 커피를 마시고
지하철을 타면 “직장이 없나?”하는 눈치를 잔뜩 받게 됩니다.
텅텅 비어있는 다른 자리로 도망하면 그만이죠. ㅎㅎㅎ

급하게 허리춤을 만져봅니다.
휴우… 바지는 입고 나왔네요.
요샌 하도 정신이 없어서 ㅎㅎㅎ

두 번의 환승 후 언주역에 내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기대
다시금 밝아지는 밖을 구경하며 걸어올라갑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직장인 무리의 목소리가 경쾌하네요.

“여행 다녀오시나 봐요. 주말에 안보이시던데. 라면 새로 채워뒀어요. 맛있게 드세요.”

깜짝이야. 고시원 원장님입니다. ㅎㅎㅎ

언주역으로 내려가시는 원장님께 90도 인사를 박은 뒤
원장님의 미소를 확인하고
언덕길을 터벅터벅 걸어올라갑니다.

한 10분을 걸어올라가면 ㅇㅇ원룸텔이 나옵니다.
이른바 고시원이죠. 

4층에 올라가서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두고
실내화로 갈아신은 뒤 찐득거리는(?) 바닥을 지나
복도 맨끝으로 가서 오른쪽 방이 저의 또 하나의 집입니다.

네. 집이 2개입니다. ㅎㅎㅎ

월 120만원의 호텔식 코리빙 하우스와 월 30만원인 고시원입니다.
고시원 월 30만원은 1년치를 선불로 내면 맞춰주겠다고 한 가격이구요.
중간에 방을 빼게 되면 원 가격으로 한달에 50씩 빼겠다고 하는 것이 조건이었지요.

제가 좋아하는 만화로 “호문쿨루스”가 있습니다.
내용은 제쳐두고 주인공은 호텔에 머물기도 하면서 수시로 
노숙자들 공원에 차를 대고 숙식하며 평안을 느끼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차마 노숙을 할 자신은 없어서
(일단 차가 없고 먼가 수면 중에는 보호를 받고 싶어서)
이렇게 따로 고시원을 잡고 두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집중을 필요로 하는 문서 작업은 먼가 여기에서 하면
옆방 통화소리도 들리고 낮에 자는 사람들 소리도 들리지만
(갑자기 꽝! 하는 소리도 들리죠. ㅎㅎ 분명 코고는 소리였는데 말이에요.)
군대생각도 나고 문서내용에 더 집중해서 처리하게 되고
책을 읽어도 먼가 더 집중이 잘되고 내용이 잘 이해됩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슬그머니 나와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다른 집으로 갑니다.

여기서 밤을 지내면 갑자기 흐느끼는 울음소리 … 등
생각보다 갑자기 발생하는 일들이 많아서
아직은 낮(?)시간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고시원 방에서 샴푸만 챙겨나와 공용 샤워장으로 갑니다.
(아니 복도는 왜이리 찐득한거지…)
샤워실에 문은 있지만 잠기지 않고
창문은 없지만 입김이 나옵니다.

천장에 점 투성이는…
네…
못 본 셈… 치죠. 뭐.

뜨거운 물이 나오지만 순간적으로 차가운 물이 섞여 나오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씻어야 합니다. ㅎㅎㅎ
샴푸로 머리에 한껏 거품을 만들고 있는데

똑똑
네~
안에 샴푸 좀 주.. 주.. 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이 아닌데…
그럴 수도 있는데…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죄송함”이 묻어납니다.

머리에 거품이 가득한 상태로 둘러보니
바닥에 샴푸가 하나 있는데 묵직하네요.
산 지 얼마 안되는 샴푸는 귀하고 귀하죠.

팔만 뻗어 밖으로 건네준 뒤
쏟아지는 물에 머리를 갖다 대는데 아차!!
차가운 물 타임이었습니다. ㅎㅎ

다시 물이 따듯해짐을 확인하고 머리를 갖다댑니다.

샤워를 마치고 수건을 2개층 40개의 방
입주민이 사용하는 3대 중 1대 건조기에 돌리고
공용주방으로 들어갑니다.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가 저를 반기고
프라이팬에 물을 붓고 가스렌지에 올린 다음
고시원 원장님이 가득 채워주신 라면을 뜯어 넣습니다.

따로 냄비 받침이 보이지 않아
대충 행주 하나를 공용주방에 하나 있는 테이블에 올리고
그 위에 프라이팬을 올립니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쇠젓가락이 몇 개 비치되어 있지만
차마 거기까진 타협이 안되네요. ㅎㅎㅎ
뒷주머니에서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꺼내 뜯고
라면을 한입 집어 쭉~ 올렸다가 입에 넣는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

방금 샤워를 마친 4학년의 뒷덩이가 탐나는거니~??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다른(?) 좁은 공간이 있지만... 앗흥
시선만으로 날 느끼게 하다니... ㅎㅎㅎ

돌아볼 수 없는 시선 속에서 들리는 소리

“아저씨. 이런 곳에 사는 사람 아니죠.”

쿠~울럭~!! 쿨럭
우와~
면 한움큼이 그대로 기도로 넘어가 두ㅔ질뻔 했네요 ㅎㅎㅎ

질문인지 혼잣말인지에 대한 별다른 대답을 해주기도 전에 목소리의 주인공은
터벅터벅 걸어 본인 방으로 탁 들어갑니다.

쫄깃하게 끓여진 라면 맛이 묘~합니다.
고춧가루도 좀 넣어서 화끈하게 맛이 있긴 한데.. 말이죠..

눈치..챘나?
언제..부터?
쇠젓가락을 안써서?

생각해보니
말라떼 JTV에서도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대에 가장 가까운 소파에 앉아서
스피커에서 울리는 음악소리와
머리 위로 흩날리는 담배 연기를 직빵으로 맞으며
가라아게, 콘치즈, 교자에 콜라를 연거푸 2캔이나 들이키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ㅂㅂㅇ들의 댄스를 감상하는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노래도 실컷 부르고 또  다시 꾸야에게 노래 예약쪽지도 건네고
양념치킨이랑 안주도 우적대며 추가로 주문하고 
다시금 돌아가며 춤추는 ㅂㅂㅇ도 보며 박수도 치고 ㅎㅎㅎ

3타임 연장까지 옆자리를 지키던 친한 ㅂㅂㅇ가
“빠로빠로”로 룸으로 들어가고 제 옆을 채운 처음 보는 ㅂㅂㅇ가
마냥 흥에 겨운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다른 것을 즐기러 왔어.
여기 사람들과 달라.
그런데 굉장히 즐거워 보여.

그때 가라아게 맛이 갑자기 참 묘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새로 뜯은 콜라의 탄산도 하나 느껴지지 않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혹시 연장 500페소가 없어보였던 걸까요?? ㅎㅎㅎ
3타임 연장하고 콜라만 처묵처묵하다가 고대~로 내뺄까봐 마마상이 보낸 CCTV?? ㅎㅎㅎ

댓글목록

louse님의 댓글

louse 작성일

몬가 잘못 된것 같아여~~ 핸폰에선 삭제된 글 로 표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