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EP2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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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EP2



트라이시클은 계속해서 산길을 올라 이젠 인적마저 끊겼습니다. 한낮임에도 울창한 열대우림은 햇빛을 가려 어두컴컴하기까지 합니다. 이대로 미씽코리안 뉴스 한 줄 나오기 딱 좋은 날이었습니다.

드라이버와 그 아이는 한참을 따갈로어로 대화합니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저 새끼 어디서 묻어버릴까 논의하는 한국인납치단이 아닐까 강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점점 제 호흡은 가빠지고 공포가 온몸을 휘감을 때쯤...트라이시클은 멈췄고...

이제부터는 걸어 올라가야 한다며 그 아이가 앞장섭니다. 여기서 어디로 막 도망갈 수도 없고...어쨌거나 제가 의지할 사람은 이 아이밖에 없었습니다.

이 아이 뒤를 졸졸 따르며 드라이버가 몰래 빠따 들고 와서 후려치는 건 아닌지 계속 후방을 감시했습니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빨리 오라고 다그칩니다.

한 15분쯤을 걸어 올라가자 집이 몇 채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가리키며 자기 고향집이랍니다. 그제야 납치는 아니구나 안도감에 큰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멀리서 봐선 잘 몰랐는데 가까워질수록...세상에~~ 집이 딱 티비에서 오지 탐험할 때 나오는 그 집 이였습니다ㅋ

벽돌 쌓고 진흙을 바른...지붕엔 파란색 양철판을 여러 개로 겹쳐놨습니다.

집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수도시설도 없어서 빗물 받아서 사용하고 식수는 사 먹는다고 하네요.

부엌엔 아궁이가 있어서 나무로 불 피워서 요리하고요...

전기는 따로 안들어오고 발전기 돌려서 사용하는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쇼킹했던건 외부에 화장실이 있는데 문이 없더라구요. 좌우 후방은 가려져 있는데 앞에 문이 없어서 정말 황당하더라구요. 떨어져 나간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주변 인프라와 안어울리게 의외로 좌변기더라구요. 물은 바가지로 퍼서 내리구요.

집에 도착하자 그 작은집에서 스무 명 넘게 우르르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빠 엄마 앤트 엉클 시스터 브라더 니스 네퓨 썬... 한명 한명 사열하듯 소개받으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무슨 코리아 사위가 온 것 마냥 아주 극진하게 환영해줍니다ㅎㄷㄷ

꼬맹이들 중 하나가 지 썬 이랍니다. 피부색도 좀 다르고 서로 데면데면 하더라구요. 나중에 물어보니깐 18살에 차이니즈랑 사고 쳐서 출산했고 그 후 애 아빠는 런어웨이 했답니다. 지 새끼 먹여 살리려고 KTV에서 돈 벌어 보내고 지새끼는 엄마가 다 키워준다고 하네요. 한번 오기가 이리 힘들고 일 빼먹기도 쉽지 않아서 어쩌다 한 번씩 지새끼 보니깐 서로 살갑지 않은 것 같더라구요. 필리핀에서 흔하게 듣는 얘기면서도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산골 오지 생일잔치에선 짐승이나 잡아서 바베큐 해 먹을 줄 알았는데...레촌, 시식, 판싯, 피자 등등 웬만한 음식이 다 준비돼있었습니다. 아침에 시내 가서 다 사 왔다고 하네요.

심지어 가라오케 기계까지 렌트해서 어르신들 노래부르더라구요. 계속 부르더라구요. 멈추지 않고 돌아가면서 끊임없이 부르더라구요.  오늘 노래 못 부르면 다시는 못 부를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부르더라구요. 비싼 기계 빌려왔는데 본전 뽑으려는 것 같았어요ㅋ

도시사는 사람이나 산골 오지 사는 사람이나 필리피노들은 생일파티에 정말 진심이라는게 느껴졌습니다.

긴장하고 힘든 여정으로 완전 허기져서 잔치음식 게걸스럽게 먹었습니다. 땀 뻘뻘 흘리면서...와~ 정말 개더웠습니다.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하나 없더라구요. 미친듯이 땀흘리는 저를 보고 그 아이가 연신 부채질 해줬습니다.

나중에 숙소 와서 보니깐 입고 간 청바지가 땀 때문에 이염되어 양말까지 청바지색으로 바꿨더라구요ㅋㅋ

식사 후 그 아이 형제자매님들하고 술 한잔하잡니다. 딱히 술 마실 공간도 없어서 부엌떼기에서 간이의자 놓고 옹기종기 앉아서 마셨습니다. 냉장고가 있을 리는 만무하고 어디서 큰 얼음덩어리를 가져와 식칼로 조금씩 잘라 레드홀스를 따라주네요ㅋㅋ

평소엔 입도 안 대는 레드홀스인데...너무 덥고 갈증 나니깐 얼음 탄 레드홀스가 냉수처럼 느껴졌습니다.  벌컥벌컥 몇 잔 마셨더니 바로 취기가 올라오더라구요.

그 아이 언니는 영어가 좀 되는데 남자 형제들은 뭔 말을 하는 것인지...내 말을 알아듣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첨엔 말도 잘 안 통하고 서먹서먹했는데...역시 알콜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취기가 오르자 금세 위아더월드가 됐고...우리는 노래부르며 부엌떼기에서 춤추며 미친 듯이 놀았습니다. 땀 뻘뻘 흘리며...단언컨대 그날 흘린 땀이 훈련소에서 흘린 땀보다 많았을 겁니다.

그리 놀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여기서 더 술 먹고 정신 놓으면 돌아가지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안그래도 그 아이 아버지가 자고 내일 가라는데...헐~~ 여기서 잤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안됐습니다.

트라이시클을 내렸던 그곳까지 집에 있던 20명이 전부 나와서 배웅해줍니다ㅋㅋ 다시 한명 한명 사열하듯 악수하고 작별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귓속말로 아빠는 3000, 엄마는 2000, 다른 어르신들은 1000, 형제자매님들은 500, 꼬맹이들은 100씩 주랍니다. 순간 10K 넘게 털리고 이런 식으로 삥뜯기나 싶었는데...나중에 생각해보니깐 이 아이는 저를 자랑하고 면을 세워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주 놀러오라며 꼭 다시 보자는 눈물겨운 작별인사를 마치고 서 있는 트라이시클로 갔더니...헐~~ 아까 그 드라이버가 있네요ㅋㅋ 알고 보니깐 시내와 이 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드라이버여서 가족같이 지낸다고 하네요.

트라이시클에서 내려 지프니...지프니에서 다시 미니밴을 타고 겨우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랩밖에 안타던 제가 이날 하루에 필리핀 대중교통은 다 타본 듯합니다.

둘 다 너무 고된 하루였는지 숙소 오자마자 대짜로 뻗어서 빠따이했습니다.

정말 정말 무지 무지 긴 하루였습니다.




to be continued.....

댓글목록

망쿳님의 댓글

망쿳 작성일

캬... 재미집니다
현실감+현장감 120%의 리얼한 경험담 너무 좋은데요?

저도 그닥 많이 접해본것은 아니지만 필 로컬 사람들 삶의 단편을 볼때마다 드는 생각이
사람 살이란게 참 별거 없구나. 하루 기뻤다가 또 하루 슬펐다가 뭐 그렇게 살아내는거지 하는것과

벼라별 일이 다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직까지 피붙이 가족이란게 참 의미와 역할이 크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필이란 나라를 어떻게든 끌고 가는 힘이 아닌가.. 하는것이더라고요.

횽횽님의 댓글

횽횽 작성일

좋은 경험하셨네요 ㅎㅎ

저녁하늘님의 댓글

저녁하늘 작성일

재미있게읽었습니다

루비린님의 댓글

루비린 작성일

다큐 같습니다 ^^

보래이님의 댓글

보래이 작성일

어휴 사진만 봐도 더워보입니다 ㅎㅎ

육보시스님님의 댓글

육보시스님 작성일

현장감이 살아있는 리얼 다큐 스토리네요 다음편 기대됩니다 ㅎㅎ

ksjustin님의 댓글

ksjustin 작성일

여성분이 한국남자 친구 덕분에 면을 제대로 세웠네요 ㅎ

mksh님의 댓글

mksh 작성일

진정 로컬이네요!맨날 카지노 제티비만 다니는 저로서는 신세계!

천지자님의 댓글

천지자 작성일

용기에 한표 깔끔한 마물까지에 또 한표 드림니다. ㅎㅎㅎ
대단하셔요 잊지못할 기억 남기셨네요

ㅌr락천ㅅr님의 댓글

ㅌr락천ㅅr 작성일

필리핀 사람들이 더 정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찜통속에서 잠을 잤던 추억도 있어요.. 보내 주질 않아서... 좋은 경험하셨네요.. ^^

Satyr님의 댓글

Satyr 작성일

필리핀 사람의들 정이 느껴지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많은 순수한 사람들 때문에 그래도 필은 갈만한 곳이라 생각 합니다.

늙은스타벅스님의 댓글

늙은스타벅스 작성일

나는 자연인이다 필리핀편~~!!!!!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예전몸매님의 댓글

예전몸매 작성일

책보다 더 재밌습니다ㅎㅎ

디폴트님의 댓글

디폴트 작성일

제대로 필리핀즐기시는군요

아마도님의 댓글

아마도 작성일

나는 행복한거구나...

노가다꾼님의 댓글

노가다꾼 작성일

한참 지난일이신거같은데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다음글을 기다립니다.

세부자리님의 댓글

세부자리 작성일

더위를 너무 잘타는 저로서는 경험하기 힘들듯 해요
직접 경험은 힘들지만 이렇게 글로써 경험하네요
아 더워 샤워하러 갑니다 ~~~^^

찮은이형님의 댓글

찮은이형 작성일

작문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감정이입이 확 되면서 집중하면서 읽었네요~ 하루에 한편 씩 매일 올라오면 좋겠어요 ㅎㅎㅎ

kyo3님의 댓글

kyo3 작성일

재미있는 경험하셨네요~

정예멤버님의 댓글

정예멤버 작성일

와..참..이런거보면..필핀사람들..순수한거 같긴해요.

파랑케님의 댓글

파랑케 작성일

10000페소에 값진 경험하셧네요 ㅋㅎ

^_________^님의 댓글

^________… 작성일

오짗-ㅔ험을~~~~ 대단하십니다^^;; 전 30분도 못 버텼을듯^^;;

만인의아빠님의 댓글

만인의아빠 작성일

고생은 하셨지만 제대로된 경험하신 것 같네요 ㅎㅎㅎ

소리꾼님의 댓글

소리꾼 작성일

여행 제대로 하시네요 ㅎㅎ 부럽습니다

그총각님의 댓글

그총각 작성일

3편 보고 왔습니다

제이든89님의 댓글

제이든89 작성일

오랜만에 들어와서 거꾸로 읽고 있는데 바로 첫 에피소드 찾으러 갑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