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미구엘 그룹 최고 경영인 회장 (Chairman, CEO)Eduardo “Danding” Cojuangco Jr (에두알도 단딩 코후앙코 Jr)출생 : 1935년 6월 10일교육 : 라살고등학교, UP 농대 졸유학 : *폴리 미국 캘리포니아 산루이스 오비스포 폴리테크닉 대학, (Polytechnic College, San Luis Obispo, California)에두알도 단딩 코후앙코 주니어(77)는 산 미겔사의 장래는 사업의 리더십으로 이익을 발생할 경우 기꺼이 국가의 장래와 사회적 목적을 달성 하는데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산미겔(SMC)은 우리 민족의 선두 기업으로서, 우리는 일자리 창출, 농촌 개발과 인프라를 개선하고 관광 성장을 장려시키고 강도 높은 금융을 일으켜 국민에게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을 제공, “1983년에 주로 맥주와 식품 기업을 거대하게 성장”시킨 인물이다. P6.6억 페소의 매출 및 P40억3만 페소의 이익을 발생시켰을 때 그는 1983년에 SMC를 인수했다. 현재 매출 P760억 페소에 P60억 페소의 판매수익을 냈다. 만약 이 사람이 필리핀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면, 정확한 정치적 이념과 목표를 가지고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실질적인 국가발전을 이루어 나갈 적임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최근 단딩 (코후앙코의 닉네임)의 새로운 비젼과 자원이용 및 동원력은 산미겔 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부각시켰다. 산미겔 사는 세계의 가장 큰 중산층 마켓인 중국과 인도가 포함되어 있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대한 사업메리트를 이미 간파하였으며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말레이시아, 대만, 호주 7개국을 향한 특별사업계획을 세워 놓았다. 산미겔사는 베트남에 돼지 사육농장과 사료공장을 함께 매입하여 인도네시아 지역의 육류 가공산업을 크게 더욱 확장할 계획을 세워 추진해 나가고 있다. 태국의 식료품 사업 진출을 점차 가시화 하고 있으며 호주에서는 호주의 쥬스 생산업체인 Berri Ltd.의 절반을 인수하여 앞으로 호주에서의 음료산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싱가포르에는 커피사업에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3년에, 그는 US 49million(P500million)으로 Zobel 가족으로부터 SMC의 20%를 샀다. 그 해 그는 산 미구엘 자금을 사용하여, P1.6억 페소에 코코넛 은행 31% 구입 - 코코넛 은행의 선호하는 주식 P500million에 우선주를 매입하고 현금 P1.156억 페소를 은행에 SMC의 명의로 현금 예금 인치하고, P1.6억 페소의 거래를 활용, 산 미겔은 그 자체 31%를 구입하기 위해 자신의 돈을 사용했다. 동시에 코코넛 재배 연합은행(UCPB)도 부과가 중지되었을 때 1982-1974에 P9.6억에 달하는 코코 부과 자금을 보관했다. 그 결과 코코넛 재배 연합은행(UCPB)에 예치된 산미겔(SMC)사와 코코 부과의 예금을 혼합했다. 2011년 대법원은 “코후앙코는 하수인이 아니며 산미겔에서 자신의 20%를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판결했다. 정부는 실질적으로 판매한 코후앙코의 20%를 반환해야했다. 2012년 1월에 대법원에서 그가 코코 부과 돈을 사용하여 1983년에 소리아노와 고콩웨이 그룹에서 구입한 31%를 선언했다. 대법원은 국가는 코코넛 농민에 대한 신뢰로 31% 배당을 명령했다. 년 당 8% 적립을 선호하는 우선주에 3년으로 산미겔(SMC)의 선택에 되살릴 수 있는 보통주식의 24%-2009년, 대법원은 31%의 전환 명령을 내렸다.코후앙코는 코코넛 산업에 초점을 맞추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코코넛 오일, 코프라, 말라 코코넛 제품을 미국 75%와 유럽대륙의 Uniliver,와 Procter and Gamble사에 45%의 최대량을 수출했다. 필리핀은 코코넛 제품의 세계 최대의 수출국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두 주요 다국적 구매자가 자신의 제품을 원하는 가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코후알코 조직은 11개 국가에 코프라와 코코 오일을 수출을 했다. 그 결과 수출에 막대한 횡재를 보았다. 필리핀 농업의 주 수출품은 쌀보다 코코넛을 더 많이 수출했다. 그는 코코넛 재배 연합은행 (UCPB)을 설립했다. 그 결과로 그는 두 주요 복합기업을 구축했다. 민중의 힘은 UCPB의 성장을 멈추게 했지만 그러나 코후앙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필리핀의 제일가는 SMC를 만들었다.
[출처] 코리아포스트 필리핀 - http://mykoreapost.com/mw/bbs/board.php?bo_table=phillpeople&wr_id=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