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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필리핀, 대립에서 공존으로의 개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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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코리아포스… 댓글 1건 조회 1,980회 작성일 13-01-2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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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거점 방어 모로 민족 해방 전선의 전 이슬람 전사, 독립의 꿈 접고 “육군 소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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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제 603 여단 사령부 캠프 ‘아부바칼’에서 전 이슬람 전사 아타리 소령(중앙)에 경례하는 국군 병사들

필리핀에서의 분리·독립을 목표로 한 반군 세력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ILF)이 소규모 이슬람 독립 국가로 구축한 최대 거점 “캠프 아부바카루(마긴다나오 주 바리라 마을)” 국군의 손에 평정되어 2000년 10월 이후, 육군 제 603여단 사령부로 재정비되어 같은 주와 남쪽 라나오, 코타 바토 두 주 경계에 위엄을 드러냈다.

10년 1월부터 여단장을 맡고 있는 로데리오 산토스 대령(53)은 “공략 직후야말로 소규모 교전이나 매복 공격이 있었지만, 내가 여단장이 되어서는 약 3년간은 전무였다.

최근 그는 경호병도 없이, 혼자 주위 도시를 시찰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 해졌다”며 웃는다.

사령부를 보호하는 주둔병은 약 200명 중 32명이 무슬림 병사들의 예배, MILF가 건설한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이 32명은 사실 이슬람 국가 수립을 꿈꾸며, 국군과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이슬람 전사들이다. 모두 모로 민족 해방 전선(MNLF, 1970년 설립)이 96년 대비 정부와 맺은 평화 협정에 따라, MNLF에서 국군에 편입되었다.

약 2년 전, 여단 사령부에 배속된 샤리후 하야부 아탈리 소령(53)은 MNLF를 창설한 땅, 스루 주 출신으로 동갑내기 산토스 여단장이 수도권 외곽의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병사하여 졸업 할 수 없었다.

집에 있어도 먹을 것이 없어서, MNLF 이외의 선택 사항은 없었다”고 반 정부 활동에 참가했다.

그러나 MNLF 참가 후의 생활도 가혹했다.

스만(멥살떡)) 하나로 굶주림을 치유, 산에 자생하는 고구마를 입에 각지를 전전하는 날들을 거듭했다.

1일 3회 식사를 못하는 가운데, 많을 때는 하루에 3번 이상 전투에서 살아나면서 약 20년간 죽인 국군 병사는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96년 평화 협정 체결 시에는 자신의 결단으로 국군에 참가했다.
“민다나오 방출을 위해 싸웠지만, MNLF 간부가 큰 집에서 살고, 차를 몇씩이나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라고 의문을 가졌다”라고 한다.

국군 편입 후 약 1년간의 재교육을 거쳐 “육군 소위”가되어, 이후 16년간 3계급에 소령까지 승진했다.

현재 기본급은 월 3만 7000페소. 1일 3회, 거의 정시에 식사를 하고, 자신이나 가족이 병을 무료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5명의 아이들도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수없이 국군 병사를 죽인 MNLF 시대와는 대조적으로, 국군 편입 후 한 번도 사람을 향해 발포하지 않았다.

“MNLF 시대보다 지금이 좋다. 월급 100만 페소를 준다고 말해도 산(山) 생활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서 “어렸을 때는 군인을 동경했다.

사실 반사 모로(이슬람 국가) 군인이 되고 싶었다. 단, 독립이라는 꿈은 결국 언제 까지나 실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타리 소령은기이하게도, 정년을 맞는 4년 후 2016년에는 MNLF에서 분파, 比·國 으로부터 분리·독립을 목표로 해왔다.

MILF와 比· 정부의 평화 합의에 따라 새로운 자치 정부 “반사 모로가 창설된다”한다.

이슬람 전사로, 총을 버릴 것인지, 아니면 투쟁을 계속할 것인지?

20년 전 자신과 같은 선택을 강요하는 MILF 동지는 “만약 국군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이들을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다. 평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조언. 그 말은 꿈을 깨고 현실적인 길로 나아간 자신에게 “이길이 좋았다”라고 훈계하는 것처럼 들렸다.

△‘모로 민족해방전선’(MNLF)과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ILF)

모로 민족해방전선(MNLF)은 1970년, 초대 의장이 필리핀에서 분리·독립을 목표로 설립했다.

76년 대비 정부와 트리폴리 협정을 맺고, 자치권 확립을 축으로 한 평화 교섭의 틀을 확정했다.

20년에 걸친 협상 끝에 1996년 평화협정 체결에 이르렀다.

체결 후 개발사업 등의 이권이 초대 의장 주변에 집중하고 내부 대립의 격화를 받아 들여 의장 해임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는 초대 의장, 세마 현 의장과 의장을 의심하는 각파 등이 존재하지만, 평화 협정에 대한 인식은 “이행의 부족”으로 일치하고 있다.

한편,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ILF)의 창시자는 트리폴리 협정 체결 후 2년 뒤인 78년, MNLF을 이탈한 故 사라마토 초대 의장.
자치권 확립 노선을 선택한 MNLF와는 대조적으로, 이슬람 국가 수립을 최종 목표로 무력 투쟁을 계속했다.

97년에 시작된 평화 협상은 통치 형태와 공간 문제 “공화국 헌법 테두리 내의 자치”를 넘는 고도 자치를 요구. 에스트라다 정권(98 ~ 2001년) 아래의 “전면 전쟁”에서 많은 거점을 제압하면서도 세력을 유지했다.

아로요 전 정권은 통치기구 신설과 광범위한 권한 이양 등으로 평화 협정 달성을 서둘렀지만, 대법원의 위헌 판결(2008년)을 계기로 협상이 일시 중단했다.

11년 6월에 시작된 아키노 현 정권과의 협상에서 MILF 측은 당초 입법 권한과 자원 개발권 양도를 수반 “하위 상태(연합국가)”설립 등 개헌을 포함 요구를 요구했다.

같은 해 8월, 무라드 현 의장과 아 키노 대통령과의 전격 회담을 계기로 협상이 전진하기 시작, 그 후 약 1년만에 평화 합의에 도달했다.

MNLF는 1996년 평화 협정과 관계된, 합의에 반발하고 있다. 

댓글목록

닐정님의 댓글

닐정 작성일

언제든 바뀔수 있다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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