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부산엑스포
재외국민

전체 가입 회원수 : 198,402 명

아키노 대통령, 45년 전 이슬람 요원 학살 사건 행사 첫 참석

페이지 정보

작성자코리아포스… 댓글 1건 조회 1,796회 작성일 13-03-25 21:09

본문

마르코스 정권, 1968년 3월에 일어난 “‘쟈비다 학살 사건’ 45주년” 기념식

2015149334_1c10eca6_9a.jpg
코레히돌 민다나오 평화 공원 기공식에 참석한 아키노 대통령

마르코스 정권 하의 지난 1968년 3월에 일어난 “‘쟈비다 학살 사건’ 45주년” 기념식이 18일 마닐라 만 코레히돌 섬에서 아키노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학살 피해자는 국군이 스루 주 등 민다나오 지방 남부에서 끌어 모은 이슬람 젊은이들로 말레이시아 사바에 잠입, 극비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지만, 섬에서 훈련 종료 전에 국군에 의해 말살되었다.

3년 후 1971년 군법 회의에서 국군 관계자의 무죄가 확정되어 사건은 이후 약 40년 동안 역사의 어둠에 묻혀왔다.

그러나 민다나오 평화를 향한 움직임과 “술루 왕국 군”소탕 작전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 아키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행사에 참석해 “코레히돌 섬에서 생긴 과거문제를 재현한다는 것은 사건의 교훈을 무시하는 것이며, 역사의 상처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라고 비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강조했다.대통령궁에 따르면, 극비 작전을 계획한 것은, 1965년에 취임한 마르코스 대통령이다.

전임 마카빠갈 대통령의 사바 영유권 주장에서 5년 후 1967년 11월, 무슬림으로 구성된 ‘쟈비다 부대’를 사바에 잠입하는 극비 작전 ‘메르데카’를 국군에 지령했다.

동시에 같은 주 영유권을 주장하는 “술루 왕국 후예 (마츠)”에서 영유권 협상을 일임하는 위임장을 작성, 같은 주 획득을 향한 준비를 갖추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쟈비다 부대 요원 200여명’이 방문, 타위타위 두 주 등에서 모집해 수백명을 코레히돌 섬에 보내졌다.

그러나 1968년 1월 훈련 시작 후 극비 임무의 내용을 알게 된 대원들로부터 “같은 이슬람교도를 죽일 수 없다”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훈련을 담당하는 국군 장병의 차별적 취급과 급여 미지급 문제에 대해, 대원들은 대통령에게 직소를 서면으로 준비했다.

이들의 정보를 입수한 마르코스 정권은 극비 작전의 결행을 포기하고, 비밀 유지를 위해 이 섬에 남아 있던 대원들은 국군에 의해 사살됐다.

희생자의 수는 여러 설이 있으며 현재 30 여명이 유력시 되고 있다.

확인된 생존자는 바다에 뛰어 들어 죽음을 면한 1명뿐.

아키노 대통령의 망부 (亡父), 베니그노 전 상원 의원들은 사건 직후 이 생존자 증언 등을 기초로 마르코스 정권을 준엄하게 추궁하고 민다나오 지방에서는 모로 민족 해방 전선 (MNLF)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 운동이 활발했다.

그러나 1971년 군법 회의에서 국군 관계자에게 무죄가 선고되고 또한 다음 1972년의 계엄령 선포를 계기로 사건의 진상은 어둠에 묻혔다.

아버지의 유지를 계승, 아키노 대통령은 45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정부는 지금까지 과거의 상처인 사건을 역사에 재현하려고 하지 않았다”며 역대 정권의 태만을 비판 한 후 “학살 사건을 역사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첫 걸음이 된다.

또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은 평화적 대화 이외는 없다”고 강조하고, 민다나오 평화의 실현과 사바 ‘왕국 군’문제의 조기 해결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행사는 생존자가 바다에 뛰어든 장소 일대 약 5천 ㎡를 “민다나오 평화 공원”으로 정비하는 기공식에 대통령 일행은 기공식에 삽을 떳다.

공사비는 무슬림들의 민간단체가 부담하고 6월 말경에 완성될 예정이다. 

댓글목록

닐정님의 댓글

닐정 작성일

전시도 아니고~무슨 학살~~~ㅠㅜ

Total 17,686건 1595 페이지
게시물 검색
subic